아들러 철학으로 마음의 병을 치료하다 - <굿 윌 헌팅>
읽어는 봤나? 미움받을 용기
2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 읽어 보셨나요?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들러 철학(심리학)> 을 아실 겁니다.
과거의 상처, 열등감에 발목 잡히지 말고, 이것을 동력으로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자는,
너무나 긍정적인 메시지의 책입니다.
이 <미움받을 용기>는 일본작가 <기시미 이치로>가 아들러 철학을 인용한 책이고요,
이 철학(이면서 심리학)의 원조는 당연하 <알프레드 아들러>입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1870~1937까지 살았던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겸 철학자이죠.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 <굿 윌 헌팅>입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이 영화의 각본은 감독이나 전문 각본가가 쓴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영화의 주연인, 하버드 출신인 맷 데이먼이 쓴 것입니다.
그것도 학교 수업의 과제로 만든 것을 초안으로 해서 만들어졌다니...
대학생 때 사람과 철학에 대한 이해가 이 정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맷 데이먼은 참 매력 있는 배우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해에 대한 바탕이 있기에 그의 연기도 더 깊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배경
영화의 주인공인 <윌 헌팅>은 빈민가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심각한 트라우마와 방치를 경험했습니다.
극 중에서는 3번이나 파양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또 학대로 인한 강제파양이었다는 설정입니다.
몸에는 양부가 담배불로 지진 자국이 있고, 또 배에는 칼로 찔린 자국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 헌팅은 IQ가 높고 수학에 재능이 있는 젊은이었습니다.
노벨상을 탄 교수들조차 어려운 문제들을 아주 쉽게 풀어버립니다 (영화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느낌과 자기 회의에 시달립니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비롯된 것인데요,
버림받고, 학대를 받은 경험 때문인지, 자신이 사랑과 성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일까요?
누군가와 깊은 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매사에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지속적인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진행
여기서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숀 맥과이어>가 등장합니다.(심리학 교수로요)
숀 맥과이어 교수는 윌이 정서적 장벽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얻도록 돕기 위해 사람 중심 접근 방식을 사용합니다.
바로 <아들러 심리학>으로요.
숀은 윌이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격려합니다.
자기가 윌을 보호해야 한다,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열고 보여주죠.
또한 진심으로 싸우기도 하고, 화도 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마음을 열어 보인 관계, 진심으로 윌을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였지요.
숀은 윌에게 개인적인 선택과 자기 결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윌과 진정성을 인정한 윌은, 곧 마음을 엽니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힘이 있고, 그 힘을 이용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간단한 원칙을 배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이 다 녹아 있습니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숀>은
상대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던지,
과거에 어떤 상처가 있었던지,
그것을 외면하고 덮도록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물론 영화에서 "네 탓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라는 유명한 장면이 나오기에
역시 환경탓이야, 위로가 답이야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너를 사랑해 돼"라고 바꿔 말해도 되는, 그런 의미의 대사입니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되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남도, 세상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방아쇠였지요.
<숀> 교수가 보여주는 태도는 진심, 존중, 신뢰입니다.
진심이기에 위로가 힘이 있고,
진정한 용기를 주게 됩니다.
다시 말해 가식적이고 표면적인 위로였다면, 이 위로는 진정성이 없었겠지요.
마음의 상처로 인해 "완벽"함만을 추구하는 맷에게 숀 교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앞뒤 맥락을 모르는 상태로 이 대사만 보면 이해가 안 가겠네요.
이 대사는 인간의 불완전성 자체를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불완전 그 모습 자체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
오히려 상대의 불완전함이 서로에게 매력이 된다.
애써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지요.
현재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좋은 사람들에 대한 신뢰.
나의 의지에 대한 신뢰( 할 수 있다는 신뢰)
그리고 이 신뢰를 바탕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실행하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숀과 함께하는 상담치료과정에서 윌은 자기의 상처를 발견하고 성장하고 해결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정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상처받은 누군가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궁극적으로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하겠지요.
그럼 신뢰할 수 있는 관계는 어떻게 만들까요?
나를 좋게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길거리 판촉사원이 무조건 헤헤 웃으면서 손님의 비위를 다 맞춰주는 것처럼 할까요?
속으론 기분 상하면서도 얼굴로만 웃고, 상대의 마음에 들도록 알랑거리면 될까요?
상식적으로, 이런 태도로는 정상적인 신뢰관계로 발전할 수 없겠지요.
저는 누군가와 신뢰의 관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고 봅니다.
진심. 존중, 그리고 솔직함. (세 단어로 표현했지만 결국 하나라고 봅니다)
상대를 믿는다는 전제가 있기에,
자신의 모든 부끄러움, 속마음, 감정까지 다 보여주는 것.
불완전함을 보여주고, 상대의 불완전함 까지도 사랑하는 것.
영화에서 숀은 자식뻘인 윌을 진심으로 대합니다.
무시하지 않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망치는 습관에 대해 질책하고, 화도 내고,
자신의 감정도 윌에게 솔직하게 오픈합니다.
또한 윌이 감추려고 하는 마음의 상처들을 애써 덮어주지 않고, 오픈하여 알려줍니다.
물론 윌의 상처를 드러내어 아플 수는 있겠지만, 놀리고 아프게 하기 위함이 아니니까요.
"해결"을 위해 상처를 드러냅니다.
숀 자신의 진심을 함께 보여주면서.
마치 곪은 상처를 붕대로 그대로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방치했을 때의 위험성을 솔직히 알려주고,
치료과정의 고통은 있겠지만 이겨낼 수 있다, 더 나아질 것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용기를 주고 수술 권해주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숀은 윌의 상황과 마음의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숀 자신의 아픈 과거를 먼저 오픈합니다.
가식 없이, 이익을 얻으려는 욕심 없이, 한 사람 인간으로서 오픈합니다.
결론
영화 <굿 윌 헌팅>은 상대에 대한 진실한 신뢰와 도움(혹은 지도)이 있다면,
누구든지 과거를 극복하고 삶의 앞날에 대한 기대와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가 하고 싶은 말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족1
일반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부모의 유무 말고) 도움을 받고 의지할만한 "어른"이 없다는 것 아닐까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의지하고 배움을 얻을만한,
"멘토"가 될만한 어른이 있는 것이 아이의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멧 데이먼이 고등학교 때, 이웃에 "하워드 진" 라는 교수가 살았다고 합니다.
이 교수가 어린 맷 데이먼을 대하는 태도는 맷에게 무척이나 감명을 주었다고 하지요.
영화에 나오는 <숀> 교수의 태도도, 이 하워드 진의 태도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좌파 학자이라 그의 업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사족2
착각하지 말 것은 이것은 영화라는 것입니다.
실제의 재연이 아니라, 허구라 것이지요.
각본가의 인생경험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반영되었을 순 있지만,
누군가의 실제적인 경험도 아니고,
현실의 인간관계에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호평을 받고, 인정을 받는 이유는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아들러 철학의 해결방식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단순하거든요.
인간의 본성을 잘 이해한 아들러 철학이고,
이것을 잘 이해한 각본가가 만든 영화이기에,
영화이며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상처치유에 대한 통찰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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